어제 코스피에서 제일 이상한 차트는 전력기기였어.
개인이 하루에 5조를 투매하고 코스닥이 연중 최저를 찍은 날, LS일렉트릭이 +12%, 효성중공업이 +8%, HD현대일렉트릭이 +7% 올랐어. 같은 날 한 자산운용 임원은 방송에서 하반기 포트폴리오를 공개하면서 이렇게 말했고. "어떤 국면에도 제 갈 길 갈 단일 테마는 전력 인프라 하나다."
표면적인 트리거는 정부가 연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야.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국가 성장축으로 못 박은 행사지. 정책 기대발 하루짜리 불꽃이라고 볼 수도 있어.
근데 지난 일주일 사이 이 테마의 숫자들이 일제히 갱신됐거든. 전부 한 방향으로. 하나씩 보여줄게.
1. 성적표가 먼저 도착했어
일주일 전에 국내 3사 이야기를 쓰면서 "낙폭 18~25% vs 이익 증가율 36~74%의 괴리"를 얘기했잖아. 그 전망치가 이번 주에 더 올라왔어.
2분기 합산 영업이익 7,246억 — 분기 사상 최대 전망이야. HD현대일렉트릭 2,811억(+34%), 효성중공업 2,845억(+73%, 올해 연간 영업이익 1조를 처음 넘는 경로), LS일렉트릭 1,590억(+46%).
수주는 더 가팔라. LS일렉트릭은 상반기 북미 데이터센터 수주만 1.2조를 찍었는데, 이게 작년 1년치(8천억)를 반년 만에 넘은 거야. 전력인프라 부문 매출은 작년 1.9조에서 올해 3.2조로 뛴다는 전망이 나와 있고. 3사 합산 수주잔액은 30조를 넘보고 있어. 효성중공업은 북미 1위 전력 EPC 콴타의 자회사와 합작법인을 세워서 10월부터 펜실베이니아에서 초고압차단기를 현지 생산하기 시작해.
실적도, 수주도, 현지화도 전부 전진했어. 그 사이 주가만 레버리지 수급에 묶여서 옆으로 누워 있었던 거지.
2. 조기 경보기가 거꾸로 움직였어
여기가 오늘 글의 핵심이야.
지난주에 이 사이클의 조기 경보기를 하나 정해뒀었어. 리드타임. 2000년대 조선주 사이클이 공급 과잉으로 죽었던 것처럼, 이 사이클의 사망 원인도 결국 공급일 텐데, 그 첫 신호는 "주문부터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이라고. 리드타임이 줄기 시작하면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는다는 뜻이니까.
그 경보기가 이번 주에 움직였어. 반대 방향으로.
미국 변압기 리드타임이 143주에서 160주로 늘었어. 3년을 기다리던 물건이 3년 반짜리가 된 거야. 해저 초고압케이블은 2029년까지 생산 슬롯이 완판됐고. 미국 데이터센터 용량은 현재 24GW에서 2030년 110GW로 간다는 전망인데, 당장 올해 예정된 12GW의 절반이 전력 문제로 지연·취소 위험이라는 분석까지 나왔어.
공급이 따라잡기는커녕, 줄이 더 길어지고 있어. 조선 사이클과의 비교에서 걱정했던 시나리오와 정확히 반대의 데이터야.
3. 영국에서 실증이 도착했어
줄이 길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이번 주 영국이 보여줬어.
Nscale이라는 회사가 에식스에 3.5조 원짜리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어. 엔비디아 GPU를 마이크로소프트에 공급할 플래그십 시설이야. 근데 90MW 그리드 연결이 안 나와서 2027년 개장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어. 그래서 뭘 하냐면, 전력망을 기다리는 대신 블룸에너지의 연료전지로 자가발전하는 협상을 하고 있어.
이게 왜 중요하냐면, 데이터센터는 고객한테 약속한 컴퓨트 납기를 못 맞추면 배상하는 계약이 많거든. 그러니까 비싼 전기라도 빠른 전기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구조가 된 거야. 전력이 상품이 아니라 납기가 됐다는 뜻이야.
재밌는 건 블룸에너지가 지난주에 숏리포트를 맞았던 바로 그 회사라는 거지. 공매도 리포트는 재무 구조를 의심하고, 실물 수요는 줄을 서고. 양쪽이 다 사실일 수 있어 — 7월 28일 블룸 실적발표가 어느 쪽이 무거운지 보여줄 거야. 어느 쪽이든 확인되는 건 하나야. 그리드를 못 기다리는 수요가 실재한다는 것.
4. 수요의 단위가 달러에서 기가와트로 바뀌었어
수요 쪽 전망치도 이번 주에 갱신됐어. 모건스탠리가 하이퍼스케일러 5개사의 설비투자를 2028년 1.4조 달러로 또 올렸는데, 이번 리포트의 진짜 포인트는 돈이 아니라 단위야.
빅테크의 가용 컴퓨트 용량: 2025년 30GW → 2028년 120GW. 3년에 4배.
아마존 혼자 35GW, 구글 31GW, 메타 21GW. 이제 빅테크 경쟁력을 데이터센터 전력 용량으로 세는 시대가 된 거야. 그리고 1GW를 짓는 비용은 메모리와 전력 설비 인플레 때문에 20% 올랐어. 차세대 GPU 랙 기준으로 GW당 490억 달러. 이 돈이 어디로 흐르겠어. 칩, 메모리, 그리고 그 전부를 꽂을 변압기와 배전반이야.
5. 한국 레이어 — 발전소 산수는 맞춰졌어, 그런데
어제 급등의 트리거였던 국내 정책도 뜯어보면 구조가 보여.
정부가 공식화한 3대 프로젝트의 전력 수요는 서남권 반도체 6.3GW + 용인 15GW + AI 데이터센터 18.4GW = 39.7GW야. 여기에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9월 제시)에 신규 원전 2기와 SMR 검토가 들어갔고, 재생에너지 100GW 조기 달성, 태양광부터 시작하는 국내생산세액공제 — 미국 IRA의 생산세액공제를 벤치마크한 한국판 — 까지 패키지로 나왔어.
근데 계획된 발전 증설을 다 더하면 38.9GW야. 수요 39.7 대 공급 38.9. 발전량 산수는 얼추 맞아떨어지기 시작했어.
그럼 뭐가 부족하냐. 만든 전기를 옮기고 안정시키는 것. 송전망, 배전망, 그리고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필수가 되는 ESS·계통 안정화 설비야. 마침 이번 주에 글로벌 배터리 저장장치 설치량이 사상 처음 연 100GW를 돌파했다는 집계가 나왔고, 구글은 데이터센터용으로 태양광 2.5GW에 배터리 2.9GWh를 붙인 사상 최대 프로젝트를 착공했어. 발전소 다음 병목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돈이 먼저 말하고 있는 거지.
일주일 전 글의 결론이 "반도체를 지을수록 전력기기 내수가 따라온다"였는데, 이번 주에 그 내수의 규모(39.7GW)와 재원(세액공제)까지 정부 문서에 박힌 거야.
6. 정직하게, 반대편
세 개만 짚을게.
하나, 가격. 어제 두 자릿수 급등으로 낙폭은 꽤 메워졌어. LS일렉트릭엔 올해 예상 이익 대비 PER이 부담스럽다는 지적도 있어. 이제부터는 기대가 아니라 숫자가 주가를 끌어야 하는 구간이고, 그 검증대가 3주 뒤 2분기 실적이야. 컨센서스(합산 7,246억)를 확인하는 것보다 수주 가이던스가 올라가는지가 중요해.
둘, 원전의 시차. 12차 전기본의 신규 원전은 준공 목표가 2037~38년이야. 워싱턴포스트는 "원전 르네상스는 보도자료만 있고 딜이 없다"고 꼬집었는데, 절반은 맞는 말이야. 원전 테마로 접근하면 10년을 기다려야 해. 지금 실적으로 연결되는 건 원전이 아니라 송배전과 ESS야. 같은 정책 뉴스 안에서도 시차가 다른 재료를 구분해야 해.
셋, 금리. 전기료 인플레가 금리를 밀고 금리가 인프라 밸류에이션을 누르는 순환은 그대로 살아 있어. 임계값은 미국채 10년물 5%(지금 4.59%). 어제 CPI 마이너스로 한숨 돌렸지만, 8월 16일 호르무즈 합의 만료가 남아 있어. 유가가 되돌아오면 이 순환이 다시 조여.
정리할게.
일주일 전에 나는 이 사이클의 감시 지표를 리드타임이라고 했어. 이번 주에 그 지표는 143주에서 160주로, 사이클 연장 방향으로 움직였어. 실적 전망은 사상 최대로 올라왔고, 영국에선 그리드를 못 기다린 수요가 연료전지로 뛰어가는 실증이 나왔고, 한국은 39.7GW짜리 내수 수요를 문서로 확정했어.
발전소 산수는 맞춰지기 시작했어. 전선은 아직이야. 부족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동하고 있고, 어제의 급등은 시장이 그 이동 방향을 다시 확인한 날이야.
이제 볼 건 네 개야. 리드타임의 방향, 7월 말 3사의 수주 가이던스, 9월 12차 전기본 확정안, 그리고 7월 28일 블룸에너지의 실적. 넷 다 같은 질문의 다른 각도야 — 줄이 줄어들고 있는가. 줄이 길어지는 동안, 이 사이클은 안 끝나.
용어 한 줄 정리
- 리드타임주문부터 인도까지 걸리는 기간. 줄어들기 시작하면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는 신호입니다.
- 수주잔액이미 계약돼 앞으로 매출로 인식될 물량의 잔고입니다.
- EPC설계와 구매, 시공을 한 사업자가 묶어 수행하는 방식. 발전 인프라 사업의 표준 계약 형태입니다.
- 초고압차단기초고압 전력망에서 사고가 났을 때 전류를 끊어 주는 핵심 기기입니다.
- 합작법인두 회사가 지분을 나눠 함께 세우는 회사. 관세와 현지 조달 요건을 넘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 그리드 연결데이터센터나 발전소를 전력망에 물리는 절차. 여기서 막히면 건물이 완공돼도 가동할 수 없습니다.
- ESS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설비.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수록 필수 설비가 됩니다.
- 전력수급기본계획정부가 정하는 중장기 전력 수요와 발전 설비 계획. 신규 원전 여부가 여기서 결정됩니다.
- 생산세액공제국내에서 생산한 만큼 세금을 깎아 주는 제도. 미국 IRA의 방식을 본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