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장이 믿고 있는 이야기
먼저 시장에 퍼져 있는 설명을 그대로 정리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이 설명은 네 칸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미국의 재정 적자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 첫째 칸이고, 적자를 메우려면 국채를 더 찍어야 한다는 것이 둘째 칸이며, 국채가 시장에 많이 나오면 그것을 소화하기 위해 금리가 올라간다는 것이 셋째 칸이고, 마지막으로 장기금리가 높으면 성장주가 눌린다는 것이 넷째 칸입니다.
마지막 칸부터 풀어 두겠습니다. 주식의 가치는 그 회사가 앞으로 벌어들일 돈을 오늘의 값으로 바꿔서 더한 것인데, 이때 나누는 비율을 할인율이라고 하고 이 비율은 장기금리를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10년 뒤에 벌 돈은 10년치를 나누므로 1년 뒤에 벌 돈보다 훨씬 크게 줄어듭니다. 그래서 이익이 먼 미래에 몰려 있는 성장주일수록 장기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오늘 계산되는 값이 많이 깎입니다.
지난주 실제 움직임이 이 설명과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7월 미국 고용이 감소했고 5월과 6월 수치도 아래로 조정됐는데, 이 정도로 약한 지표가 나오면 보통 금리 전 구간이 함께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인데도 지난주에는 만기가 짧을수록 많이 내려가고 길수록 덜 내려갔습니다. 한 달을 기준으로 보면 차이가 더 뚜렷해서, 2년 만기는 거의 제자리인데 10년과 30년 만기는 오히려 올랐습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지 못할 상황이 됐는데도 긴 쪽 금리가 버텼으니, 연준과 무관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자연스러운데, 그 힘으로 지목된 것이 재정 적자와 국채 공급이었고, 저 역시 어제 발행한 주간 리포트에서 같은 설명을 썼습니다.
이 이야기의 한 칸이 사실과 다릅니다
그런데 둘째 칸과 셋째 칸 사이가 실제로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적자가 커지는 것과 장기 국채가 많이 나오는 것은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데, 정부가 돈을 빌리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기가 30년인 국채로 빌릴 수도 있고 만기가 3개월인 국채로 빌릴 수도 있으며 장기금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앞쪽이므로, 적자 규모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찍기로 했는지를 봐야 합니다.
제가 확인한 국내 증권사 채권 리포트가 미 재무부의 분기 자금 조달 계획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3분기에 민간에서 빌릴 금액은 7,390억 달러로 예상됐는데 이는 5월에 내놓은 전망보다 680억 달러 늘어난 수치이고, 4분기에도 6,280억 달러를 더 빌릴 계획이므로 빌려야 할 돈 자체는 분명히 늘었습니다.

그런데 입찰 규모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자료가 옮긴 재무부 방침은 만기가 긴 국채의 입찰 규모를 앞으로 몇 분기 동안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고, 만기별 규모도 종전 그대로입니다. 늘어난 자금 수요는 만기가 짧은 국채와 단기 자금 조달용 증권으로 채우고, 10월에는 계절적으로 지출이 몰리는 시기에 맞춰 짧은 쪽 발행을 다시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발행한 국채를 되사는 계획도 유지됐습니다. 거래가 잘 되지 않는 오래된 국채를 일정 한도까지 사들이고, 만기가 짧은 구간도 따로 한도를 두어 사들인다는 내용입니다. 다만 같은 자료가 여기에 단서를 답니다. 되사는 돈은 새로 국채를 찍어서 마련하기 때문에 정부가 빌리는 총액이나 시장에 나오는 국채 총량 자체를 줄이지는 않습니다. 줄어드는 것은 거래가 잘 안 되는 물량이고, 그만큼 시장이 장기 국채를 소화하기 편해지는 효과는 남습니다.

같은 자료의 정리를 옮기면, 이번 발표는 장기 국채 발행을 실제로 줄였다기보다 빌릴 돈이 많은 상황에서도 장기물 공급을 더 늘리지는 않는 방식으로 조달 구조를 관리하겠다는 뜻이 큽니다. 시장이 걱정하던 장기물 공급 충격이 일단 현실이 되지 않았다는 판단입니다.
적자는 커졌고 빌릴 돈도 늘었지만 장기금리에 직접 영향을 주는 장기 국채 발행은 늘지 않았으므로, 시장이 믿고 있는 네 칸짜리 설명에서 둘째 칸과 셋째 칸 사이가 끊어진 셈입니다.
원인이 다르면 대응도 달라야 합니다
여기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인데, 전제가 틀렸다는 사실이 곧 결론도 반대가 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같은 자료를 본 두 증권사가 실제로 반대 결론을 냈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채권 리포트는 미국 장기금리의 위쪽이 막히면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반면 SK증권 채권 리포트는 같은 날 미국 10년 만기 국채의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을 냈고, 근거로 높은 국채 공급과 재정 적자, 만기가 길수록 요구되는 웃돈 부담을 들면서 짧은 만기와 긴 만기의 금리 차이가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금리 수준이 매력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장기물을 따라 사는 전략은 위험 대비 이익이 낮다는 판단까지 덧붙였습니다.

두 결론이 갈리는 지점은 전망의 방향이 아닙니다. 둘 다 긴 쪽 금리가 짧은 쪽보다 덜 내려간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갈리는 것은 수급이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뜻으로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쪽은 수급을 앞으로 새로 나올 물량으로 보는데, 이 기준이라면 재무부가 장기물을 더 찍지 않기로 했으니 새로 나올 물량은 늘지 않고 그동안 늘어날 것을 미리 예상해 붙어 있던 웃돈의 일부는 되돌아올 여지가 생깁니다. 다른 쪽은 수급을 이미 쌓여 있는 적자 총액으로 보는데, 이 기준이라면 빌린 돈의 총액 자체가 줄지 않았고 재정 구조도 그대로이니 웃돈이 빠질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두 정의는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재고 있고, 실제 결과에서도 방향은 같고 크기만 다릅니다. 정면으로 부딪히는 지점은 하나뿐인데, 30년 만기 금리가 5퍼센트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느냐입니다.
성장주 비중을 정하는 입장에서는 이 구분이 그대로 실무 차이가 됩니다. 적자 총액이 원인이라면 미국 재정이 개선되기 전까지 성장주를 피하는 것이 맞고 그 시점은 몇 년 뒤가 되지만, 앞으로 나올 물량이 원인이라면 봐야 할 것은 분기마다 나오는 자금 조달 계획이고 그 계획이 지금처럼 유지되는 한 성장주를 피할 이유는 약해집니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대응해야 할 기간이 몇 년과 몇 달로 갈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 어제 판단도 함께 수정합니다. 저는 근거로 시중 자금의 위치 변화 두 가지와 데이터센터 운영사의 채권 발행 증가를 들면서 이 셋을 재정 수급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은 보통 국채 발행이 늘어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읽히고, 바로 그 발행 증가가 이번 자료에서 부정됐습니다. 방향에 대한 판단은 유지하지만 원인을 지목한 부분은 고쳐야 합니다.
그러면 금리를 잡아 두는 것은 무엇인가
국채 발행이 아니라면 남는 설명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고용 지표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가 확인한 국내 증권사 채권 자료는 고용 발표 당일 긴 쪽 금리가 덜 내려간 이유를 실업률이 오히려 내려간 점과 다른 고용 지표들이 안정적이라는 점에 대한 의심으로 설명했습니다. 취업자 수는 줄었는데 실업률이 내려갔고, 그 원인이 노동시장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일자리 찾기를 포기한 사람이 늘어서라면 이 지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짧은 쪽 금리는 연준의 다음 회의라는 가까운 일정에 반응하지만 긴 쪽 금리는 더 긴 기간의 평균적인 경로를 반영하므로, 한 달치 지표의 신뢰도가 낮아지면 긴 쪽이 덜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둘째는 국채가 아닌 회사채입니다. 같은 자료가 고용 발표 직전 시점에 장기금리 상승 요인으로 지목한 것은 재정이 아니라 알파벳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이었습니다. 2년부터 40년까지 열 개 만기로 나눠 250억 달러를 찍는 계획입니다. 시장이 소화해야 할 만기가 긴 물량이라는 점에서는 국채든 회사채든 같고, 인공지능 투자에 필요한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몰리는 상황에서는 이 경로가 국채 발행 계획과 무관하게 긴 쪽 금리를 밀어 올립니다.

두 설명 모두 재정과 무관한데, 그중에서도 성장주 투자자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설명입니다. 인공지능 투자를 위한 회사채 발행이 장기금리를 올리고, 올라간 장기금리가 다시 성장주 가치 계산의 할인율을 높이는 구조라면, 이것은 재정 문제가 아니라 성장 산업 자체가 만들어 낸 비용입니다. 투자가 계속되는 한 이 부담도 계속되고, 투자 속도가 느려지면 부담도 함께 줄어듭니다. 봐야 할 지표가 재정 적자 발표가 아니라 빅테크의 채권 발행 일정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금리가 높다는 반론에 대해
여기까지 읽고 나올 반론이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30년 만기 금리가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고, 그러면 성장주에 불리한 것도 사실 아니냐는 것입니다.
맞는 지적입니다. 다만 금리가 높다는 것과 금리가 더 오른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데, 이미 높은 금리는 지금 주가에 반영돼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주가를 더 끌어내리려면 금리가 여기서 더 올라야 하고 그러려면 새로 밀어 올릴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자료는 그 힘 중 하나로 지목돼 온 국채 발행 증가가 당분간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두 번째로, 이 현상이 미국만의 일이라면 미국 재정으로 설명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자료가 정리한 연초 이후 변화를 보면 한국 국고채 30년 만기의 상승 폭이 미국 국채 30년 만기보다 세 배 이상 큽니다. 미국의 재정 구조가 원인이라면 한국 초장기 금리가 더 가파르게 오른 현상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만기가 아주 긴 채권의 약세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국 재정이 함께 나빠지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초장기 채권을 사 주던 연기금과 보험사의 수요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어느 쪽이든 한 나라의 국채 발행 계획만으로 이 구간을 설명하려는 것은 원인을 너무 좁게 잡은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같은 신호가 나옵니다. 같은 리포트가 주 중반 금리가 다시 오른 이유로 국고채 30년 만기 입찰에서 사겠다는 수요가 부진했던 점을 들었습니다. 발행 계획이 아니라 실제 입찰에서 얼마나 사려고 하는지가 초장기 금리를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보고 판단할 것인가
제 주장을 다시 한 문장으로 줄이면, 장기금리가 높다는 이유로 성장주 비중을 줄이는 판단은 지금 근거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금리를 높은 자리에 잡아 두는 원인이 국채 공급이 아니기 때문이고, 원인이 다르면 봐야 할 지표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단 기준을 바꿀 것을 제안합니다. 재정 적자 규모나 부채 총액 발표를 보고 성장주 비중을 정하는 대신, 세 가지를 봅니다. 첫째는 분기마다 나오는 재무부 자금 조달 계획에서 긴 만기 국채의 입찰 규모가 올라가는지이고, 둘째는 국채 입찰에서 사겠다는 수요가 실제로 얼마나 몰리는지인데 발행 계획이 고정된 상황에서는 계획보다 실제 수요가 더 많은 것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빅테크의 대규모 채권 발행 일정입니다. 인공지능 투자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계속 넘어오는 한 이 경로가 긴 쪽 금리를 밀어 올립니다.
가까운 일정으로는 이번 주 물가지표가 있습니다. 근원 물가의 전월 대비 상승률이 예상을 넘으면 짧은 쪽 금리가 다시 올라가면서 전 구간이 함께 상승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신한투자증권 리포트는 7월 물가가 유가 반영 시차 때문에 부담이 크지 않고 본격적인 반영은 8월 물가부터라고 봤습니다. 이번 주 수치가 무난해도 안심하기는 이르고, 9월 연준 회의 직전에 나오는 수치가 실제 시험대입니다. 이번 달 하순에 나오는 고용 통계 연간 수정도 함께 봅니다.

마지막으로 제 주장이 틀렸다고 볼 조건을 적어 둡니다. 다음 분기 자금 조달 계획에서 긴 만기 국채의 입찰 규모가 올라가면 이 글의 전제는 무너지는데, 국채 공급이 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주장 전체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또 국채 입찰에서 사겠다는 수요가 계속 부진하게 나오면, 공급이 늘지 않아도 시장이 소화하지 못한다는 뜻이므로 금리가 계속 높은 자리에 머무는 쪽이 맞습니다. 그리고 30년 만기 금리가 5퍼센트 아래로 내려가면 이번에는 제가 너무 조심스러웠던 것이 됩니다.
한 가지 덧붙입니다. 제가 어제 글에 적은 국채 입찰 규모 숫자가 이번 자료에서 확인한 발행 계획과 차이가 있습니다. 숫자가 다르면 판단 기준 자체가 달라지므로 원자료를 다시 확인해 다음 호에서 정정하겠습니다.

이 글은 특정 자산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공개된 정책 자료와 시장 데이터를 근거로 금리 구조를 분석한 교육 목적의 글이며, 제 이전 판단의 수정 내역을 함께 공개하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용어 한 줄 정리
- 할인율미래에 벌어들일 돈을 오늘의 값으로 바꿀 때 나누는 비율입니다. 장기금리를 기준으로 정해지며, 이익이 먼 미래일수록 더 크게 줄어듭니다.
- 분기 자금 조달 계획미 재무부가 분기마다 발표하는 국채 발행 계획입니다. 만기별 입찰 규모와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여기에 담깁니다.
- 순시장성 차입정부가 시장에서 새로 빌리는 금액에서 갚는 금액을 뺀 순수 증가분입니다. 국채 공급이 실제로 얼마나 느는지를 보여 줍니다.
- 쿠폰채만기까지 정기적으로 이자를 주는 채권입니다. 보통 만기 2년 이상의 국채가 여기 해당합니다.
- 단기국채만기가 1년 이하인 국채입니다. 이자를 따로 주지 않고 액면가보다 싸게 팔며, 장기물보다 시장이 소화하기 쉽습니다.
- 바이백정부가 이미 발행한 국채를 시장에서 되사는 것입니다. 빌린 총액을 줄이지는 않고 거래 여건을 개선하는 목적이 큽니다.
- 기간 프리미엄만기가 긴 채권을 갖는 대가로 투자자가 요구하는 추가 수익률입니다. 재정 걱정이 커지면 함께 커집니다.
- 듀레이션채권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걸리는 평균 기간입니다. 길수록 금리 변동에 값이 크게 흔들립니다.
- 장단기 금리 차이만기가 긴 채권과 짧은 채권의 금리 차이입니다. 이 차이가 벌어지는 것을 두고 커브가 가팔라졌다고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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