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한 분기에 89조를 벌었어. 성과급 충당금 빼면 106조. 국내 기업 역사상 처음으로 분기 100조를 넘긴 거야.
근데 그날 주가는 30만원이 깨졌고, 코스피엔 매도 사이드카가 걸렸어.
역대 최대 실적에 역대급 투매. 이상하지 않아?
1. 팔린 건 실적이 아니라 '자리'야
어제 폭락의 구조를 뜯어보면 실적 얘기가 아니야.
시장이 기대한 스트릿 컨센서스는 90조대였어. 89.4조는 공식 컨센(85조)보다 높았지만 기대보단 낮았지. 여기에 충당금 10조, 파운드리 적자 가능성이 겹치니까 "이익 정점 아니야?"라는 불안이 방아쇠가 됐어.
근데 진짜 낙폭을 만든 건 따로 있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야. 삼전닉스에 몰린 레버리지 상품들이 하락장에서 기계적으로 물량을 토해내는 숏감마 구조가 낙폭을 증폭시켰거든. 금융당국이 경고음을 낼 정도로.
그 결과가 뭐냐면, 코스피 선행 PER 6.6배. 지난 20년 동안 이 밑으로 내려간 건 2008년 금융위기 절정의 딱 5거래일뿐이야. 지금 금융위기급 외부 충격이 있어? 없잖아.
2. 그럼 반도체 사이클은 끝난 건가
여기서 제일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어. 마이클 버리는 마이크론을 숏쳤고, BIS는 연차보고서에서 AI 인프라가 빚과 순환금융으로 굴러간다고 경고했어. 논리는 전혀 다른데 방향은 같아. "지금 가격을 못 믿겠다."
근데 반대편 근거도 만만치 않아.
이번 사이클이 과거와 다른 게 두 가지 있거든. 첫째, HBM은 같은 용량을 만드는 데 웨이퍼를 4배나 먹어. 그래서 D램 공급 증가율이 16~17%로 구조적으로 묶여 있어. 둘째, SCA라는 장기계약이야. 마이크론은 안 사도 돈을 내야 하는 계약을 16건 깔았고, 예치금만 220억 달러를 받았어.
현장 신호도 아직 뜨거워. 대만 에이데이터 회장은 3분기에 D램 20~30%, 낸드 35~40% 인상 통보를 받았다고 했어. 시장조사기관 전망치보다 높은, 현장의 숫자야.
그러니까 지금 반도체 조정은 "사이클이 꺾였다"가 확인된 게 아니라, "꺾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수급이 불을 붙인 상태야. 둘은 완전히 달라.
3. 근데 진짜 병목은 칩이 아니야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핵심이야.
일론 머스크가 재밌는 말을 했어. 데이터센터는 2~3년이면 짓는데, 전력망(그리드)은 10년 넘게 걸린다고. 그래서 차라리 우주에 데이터센터를 올리겠다는 거야. 농담 같지만 이게 지금 AI 인프라의 실체야.
브룩필드도, Citi도 같은 말을 해. AI의 병목은 칩에서 전기로, 전기에서도 발전이 아니라 '연결'로 내려가고 있다고. 풀기 쉬운 병목은 금방 풀려. 진짜 병목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쪽에 남아.
돈의 흐름이 이걸 증명해. 아마존이 AI 인프라 지으려고 회사채 250억 달러를 찍었어. 구글은 850억, 메타는 250억. 빅테크가 빚을 내는 시대가 됐는데, 그 빚으로 사는 게 뭐야? 칩이고, 그 칩을 돌릴 데이터센터고, 결국 전기야.
4. 전력이 구조적인 이유
반도체는 기술이 점프해. 미세공정, HBM, 패키징. 그래서 공급이 따라붙고 사이클이 생겨.
전력망은 물리학이야. 변압기와 송전선은 무어의 법칙이 없어. 수십 년 전 방식에서 크게 안 바뀌었고, 앞으로도 반도체식 점프는 없어.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 곡선이 평평하면? 쇼티지가 길어지는 거야.
한국만 봐도 구조가 보여. 애플이 2030년까지 공급망 전체에 탄소중립을 요구하면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국내 최대 재생에너지 수요자가 됐어. 근데 재생에너지는 호남에 있고, 반도체 클러스터는 수도권에 15~20GW를 요구해. 발전소가 아니라 '연결'이 문제인 거지.
그 와중에 HD현대일렉트릭은 빅테크향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로 1조 1,212억짜리 장기공급 계약을 공시했고, 미국은 한국산 변압기 관세를 25%에서 15%로 내렸어. AI 데이터센터용 아날로그 부품들은 하반기에 20~30% 인상이 논의되고 있고.
5. 그래서 결론
반도체와 전력은 다른 섹터가 아니야. 같은 이야기의 1장과 2장이야.
반도체가 팔리면 데이터센터가 지어지고, 데이터센터가 지어지면 전기가 부족해져. 1장이 잘 팔릴수록 2장은 구조적으로 더 귀해져. 지금 둘이 같이 조정받는 건 같은 레버리지 수급에 묶여 있어서지, 같은 이유로 무너져서가 아니야.
확인할 건 하나야. 7월 말부터 나오는 2분기 실적 시즌. 반도체는 3분기 가이던스가 증익 경로(삼전 컨센 110조)를 지키는지, 전력기기는 수주 가이던스와 EPS가 올라가는지. 가격은 이미 공포를 반영했으니까, 이제 숫자가 말할 차례야.
공포에 팔린 게 실적인지 자리인지 구분하는 것. 지금 장에서 할 일은 그거 하나야.
용어 한 줄 정리
- 스트릿 컨센서스공식 집계된 추정치가 아니라 시장에서 실제로 통용되는 기대치. 공식 컨센서스보다 높게 형성되기도 합니다.
- 충당금앞으로 나갈 것이 확실한 비용을 미리 잡아 두는 회계 처리. 성과급이 대표적입니다.
- 파운드리남의 설계를 받아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사업. 메모리와 손익 구조가 다릅니다.
- 숏감마가격이 내리면 팔고 오르면 사야 하는 헤지 구조. 하락을 증폭시킵니다.
- 선행 PER앞으로 1년간 예상 이익으로 계산한 주가수익배수. 과거 위기 국면과 비교하는 잣대가 됩니다.
- 사이드카선물이 급변할 때 프로그램 매매 주문을 잠시 정지시키는 제도입니다.
- HBM여러 층으로 쌓아 GPU 옆에 붙이는 고대역폭 메모리. 같은 용량에 웨이퍼를 훨씬 많이 씁니다.
- 공급약정계약(SCA)사지 않아도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조건이 붙은 장기 공급계약입니다.
- 그리드(전력망)발전소에서 수요처까지 전기를 실어 나르는 송배전 망. 증설에 10년 넘게 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