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여름이었습니다. 6월에 사상 처음 9,000선을 넘었던 코스피가 7월 말 5,500선까지 밀리는 동안 서킷브레이커가 이틀 연속 걸렸고, 삼성전자는 30만원이 깨졌으며,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한 바로 그날 9.61% 내렸습니다. 이 하락을 계좌로 겪은 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정확한 장부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내렸고, 왜 내렸고, 회복의 조건은 무엇이며 그 조건이 언제 확인되는지의 장부입니다.
미리 말해 두면 이 글의 결론은 낙관 쪽입니다. 다만 그 낙관은 기분이 아니라 날짜가 적힌 근거들로 세웠고, 낙관이 틀렸음이 확인되는 조건도 끝에 함께 적었습니다. 이 지면은 7월 말부터 바닥의 위치가 아니라 바닥의 시간을 물어야 한다고 써 왔는데, 그 시간표가 8월 첫 주를 지나며 어디까지 좁혀졌는지를 갱신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내렸는지부터 정확히
내린 것은 이익이 아니라 이익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 구분이 이 글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150조원과 반토막의 동거
숫자를 나란히 놓겠습니다.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89조 4,924억원으로 1년 전보다 1,814% 늘었고, 성과급 충당금을 빼면 106조원으로 국내 기업 사상 첫 분기 100조원대입니다. SK하이닉스는 60조 5,426억원으로 557% 늘었습니다. 합산 150조원, 같은 분기 엔비디아의 영업이익을 웃도는 돈을 한국 회사 둘이 벌었습니다.

같은 기간 주가는 반대로 갔습니다. SK하이닉스는 6월 고점 대비 최대 46% 내렸고 삼성전자도 30% 넘게 밀렸으며, 코스피 전체로는 씨티가 낙폭 48%를 확정 집계했는데 같은 조정에서 대만이 29% 내린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낙폭이 유독 깊었습니다. 실적이 늘어난 폭과 주가가 내린 폭이 이렇게 벌어진 조합은 이 시장의 역사에서도 드뭅니다.
하락분의 회계
이 지면이 7월 말에 했던 분해 계산을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6월 고점부터 저점 부근까지 코스피의 하락 41.4%를 성분으로 가르면, 이익 전망은 오히려 9.3%포인트만큼 지수를 밀어 올리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밸류에이션 배수가 50.7%포인트만큼 끌어내렸습니다. 발표되는 이익은 늘어나는데 시장이 그 이익에 지불하는 배수가 무너진 것입니다.

계산을 뒤집으면 시장은 지금 발표된 이익의 60% 수준만 믿고 가격을 매기고 있습니다. 한때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이 5배를 밑돌았는데, 이는 닷컴 붕괴의 5.5배와 금융위기의 5.36배 아래로 들어간 수치입니다. 지금 금융위기급의 외부 충격이 있느냐고 물으면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하락의 정체는 실적 붕괴가 아니라 신뢰의 할인이고, 회복의 열쇠도 실적 발표가 아니라 할인이 풀리는 조건에 있습니다.

왜 내렸는가, 세 개의 힘
범인은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고, 셋의 성격이 다르므로 풀리는 시간도 다릅니다.
수급, 가장 기계적인 힘
첫 번째 힘은 수급입니다. 5월 27일 상장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에 개인 자금 13조 6,000억원이 몰렸는데, 이 상품들은 하락장에서 구조적으로 기초자산을 내다 파는 숏감마 성질을 가져서, 하락이 매도를 부르고 매도가 하락을 키우는 회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 위에서 돌았습니다. 그 결과가 한 달 사이 하이닉스 레버리지 66%, 삼성전자 레버리지 48%의 손실이고, 7월 말 이틀 연속의 서킷브레이커였습니다.

외국인 매도도 성격을 갈라 봐야 합니다. 7월 외국인 순매도 20조원의 90%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 집중됐고 같은 기간 미국에 상장된 한국 ETF에는 오히려 자금이 들어왔으니, 한국을 판 것이 아니라 반도체 포지션을 줄인 것이라는 게 집계가 말하는 바입니다. 나라의 문제였다면 회복이 어렵지만, 섹터 포지션의 문제라면 포지션이 정리되는 순간 끝나는 하락입니다.
서사, 그리고 지정학
두 번째 힘은 서사의 반전입니다. 상반기 내내 빅테크의 설비투자 상향은 자동으로 호재였는데 7월부터 시장은 같은 발표를 갚아야 할 돈의 증가로 읽기 시작했고, 잉여현금흐름 적자 전망과 조달 부담이 AI 투자 전체에 대한 의심으로 번지면서 그 의심의 가장 큰 피해자가 AI 매출 비중이 높은 한국 반도체였습니다.
세 번째 힘은 중동입니다. 호르무즈 봉쇄가 밀어 올린 유가는 금리 인상 공포로, 인상 공포는 성장주 할인율로 전달됐으므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던 7월의 코스피와 반도체는 이 삼중 압박을 한꺼번에 받고 있었던 셈입니다.

세 힘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수급은 청산이 끝나면 소멸하는 힘이고, 지정학은 협상이 풀리면 되돌아가는 힘이며, 서사만이 증명을 요구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회복의 질문은 셋이 각각 어디까지 왔는지로 쪼개집니다.
언제까지 내리는가, 채점의 현재
세 힘 중 둘은 이미 풀렸거나 풀리는 중이라는 판정이 나와 있습니다.
수급, 종료 판정
레버리지발 청산에 대해 8월 첫 주 국내 리서치의 판정이 모였습니다. 신한투자증권은 디레버리징 이후의 투자법을, 하나증권은 디레버리징의 끝과 알파의 시작을, 대신증권은 디레버리징 막바지를 제목에 올렸고 SK증권도 같은 판정에 합류했습니다. 네 하우스가 독립적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인데, 근거도 실측입니다. 레버리지 상품의 합산 자산은 고점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7월 31일 시행된 규제로 신규 유입 자체가 막혔으며, 주식 일거래대금은 90조원에서 30조원대로 내려왔습니다.

보조 지표도 같은 방향입니다. 코스피200 공매도 비율은 6월에 두 차례 10%를 넘었는데, 2020년 이후 이 수준을 넘은 것은 코로나 초기와 2022년 금리 급등기, 2023년 10월 세 번뿐이었습니다. 유진투자증권의 집계로 공매도가 이렇게 급증한 뒤 코스피200이 오른 확률은 1개월 뒤 61%, 3개월 뒤 65%, 6개월 뒤 77%였습니다. 현재 비율은 8%대로 내려왔고, 다시 튀지 않는다면 매도 압력의 정점은 지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붙었습니다.

지정학, 합의 직전
중동 변수는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합의 직전까지 와 있습니다. 이란과 오만이 호르무즈 항로 합의의 최종 문안을 작성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기대를 반영해 국제유가는 한 주 사이 11% 가까이 내려 배럴당 75달러선이 됐는데, 유가가 내려오면 인상 공포가 눅고 인상 공포가 눅으면 할인율 압박이 풀립니다. 7월의 삼중 압박 중 두 번째 층이 걷히는 중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정직한 단서가 필요합니다. 합의는 아직 서명되지 않았고, 과거 이 협상은 여러 번 문턱에서 미끄러졌습니다. 합의가 깨지면 유가와 할인율 압박은 되돌아옵니다. 이 변수는 풀렸다가 아니라 풀리는 중이라고 적는 것이 정확합니다.
청산의 끝이 곧 반등은 아닙니다
여기서 이 지면이 반복해 온 규율 하나를 다시 세웁니다. 청산은 파는 사람을 없앨 뿐 사는 사람을 만들지 않습니다. 신한투자증권이 과거 대형 청산 국면과 비교해 정리했듯, 1998년의 청산도 종료 후 바로 반등하지 않았고 매크로 쪽의 방아쇠가 당겨진 뒤에야 시장이 돌았습니다. 과거 포지션 붕괴형 급락 네 번의 기록에서도 청산 종료 후 바닥을 다지는 데 1개월에서 2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러니 지금 국면의 정확한 이름은 하락의 끝이 아니라 바닥을 다지는 시간입니다. 7월 31일의 역대급 반등과 8월 5일의 매수 사이드카, 한 주 16.5% 상승은 그 다지기가 시작됐다는 증거로 읽되, 추세 복귀의 선언으로 읽지는 않는 것이 이 지면의 채점 방식입니다.

무엇이 다시 밀어 올리는가, 네 개의 조건
남은 것은 서사, 즉 2027년 이익에 대한 불신 하나이고, 이것을 풀 조건들은 달력에 적혀 있습니다.
조건 하나, HBM 계약가 협상
가장 큰 판정은 9월과 10월 사이의 2027년 HBM 계약가 협상입니다. 시장이 2027년 이익 절벽을 의심하는 상태에서, 내년 물량의 가격이 유지되거나 오른 채로 계약되면 절벽론의 근거가 정면으로 반박됩니다. 목표주가가 148만원에서 310만원까지 2.1배 벌어져 있는 이유도 전부 2027년 가정의 차이이므로, 이 협상 하나가 밸류에이션 논쟁 전체의 판정전입니다.
이 협상에 낙관적 근거가 쌓이는 중입니다. 공급사 재고는 2분기 말 3주까지 소진됐고 3분기에는 2주가 전망되며, 낸드 고정거래가는 19개월 연속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확인했듯 애플이 중국 CXMT에서 저가 물량을 구하려다 거절당하면서 구매자들의 우회로가 막혔습니다. 재고가 마르고 대안이 사라진 상태로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조건 둘, 주주환원
두 번째 조건은 자본 정책입니다. 로이터 보도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주환원 확대안을 준비 중인데, SK하이닉스는 연말까지 구체안을 예고했고 삼성전자는 특별배당을 포함한 방안을 이사회에서 논의 중이라고 이미 실적 발표에서 밝힌 상태입니다. 국내 리서치가 재평가의 나머지 절반은 주주환원이 담당한다고 정리해 온 그 조각입니다. 사상 최대 이익이 배당과 자사주로 주주에게 닿기 시작하면, 이익의 60%만 믿던 시장이 배수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됩니다.
조건 셋과 넷, 증설의 실물과 금리의 방향
세 번째 조건은 증설의 실물화입니다. 어제 다뤘듯 삼성전자는 P6 착공을 올해 3분기로 앞당겼고 장비 발주와 단가 계약까지 당겨지고 있습니다. 2027년을 못 믿겠다는 시장에 회사들이 말이 아니라 착공으로 답하기 시작한 것이고, 3분기 장비사들의 수주 공시가 그 증거로 쌓일 때마다 2027년 서사의 신뢰는 한 칸씩 회복됩니다.
네 번째 조건은 금리입니다. 8월 28일 잭슨홀과 그 이후의 연준 경로가 성장주 할인율의 방향을 정합니다. 호르무즈 합의로 유가가 내려앉으면 인상 압력 자체가 줄어드는 구조라, 조건 셋과 넷은 중동 변수와 한 몸으로 움직입니다.

산수의 상단
조건들이 충족될 때의 산수도 적어 둡니다. 시장의 이익 반영률이 현재의 60%에서 과거 저점 국면의 74% 수준으로만 회복돼도 지수 계산은 7,000선을 가리키고, 국내 리서치의 하반기 밴드는 8,000선 위까지 열려 있습니다. 반대로 글로벌 쪽의 신중론도 병기합니다. JP모건은 향후 6개월 강한 반등을 예상하면서도 지난 5월 고점의 회복은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등의 방향에는 낙관과 신중이 일치하고, 반등의 높이에서 갈리는 구도입니다.
이 낙관이 틀렸음을 알려줄 신호
낙관을 세웠으면 그것이 무너지는 조건도 세워야 합니다. 셋입니다.
첫째, 공급사 재고의 반전입니다. 지금 낙관의 물적 토대는 2주에서 3주까지 마른 재고입니다. 분기 보고서에서 공급사 재고가 4주대로 다시 쌓이기 시작하면, 부족의 서사와 협상력 논거가 함께 무너집니다. 이 지면이 7월에 세운 무효 조건 그대로이고, 지금까지는 발동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HBM 협상의 실패입니다. 9월과 10월 사이 2027년 계약가가 의미 있게 인하되거나 물량이 축소되면, 시장의 2027년 불신이 옳았던 것으로 판정됩니다. 이 경우 하락의 성격이 수급에서 펀더멘털로 바뀌므로, 이 글의 낙관은 폐기하고 새로 계산해야 합니다.
셋째, 크레딧의 전염입니다. AI 조달 부담이 하이퍼스케일러 회사채 스프레드의 확산으로 번지면, 즉 AI 관련 기업 밖의 회사채까지 조달 비용이 뛰기 시작하면 서사의 문제가 시스템의 문제로 격상됩니다. 지금까지 스프레드는 AI 발행사 안에 머물러 있고, 이것이 유지되는지가 감시 대상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하지 않는 말을 적어 둡니다. 지금이 바닥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7월에 밸류에이션 바닥이라 불리던 자리가 하루 만에 뚫리는 것을 이 시장은 이미 봤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락을 만든 세 힘 중 둘이 걷히는 중이고, 남은 하나의 판정일이 두 달 안에 몰려 있으며, 그 판정에 낙관적 증거가 쌓이는 속도가 비관적 증거보다 빠릅니다. 절망은 판정일이 없을 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판정일이 있고, 그날까지 확인할 지표가 있으며, 틀렸을 때 인정할 조건도 정해져 있습니다. 이 글의 채점 결과는 각 판정일에 이 지면에서 공개로 이어가겠습니다.
용어 한 줄 정리
- 서킷브레이커주가가 급락할 때 매매를 일시 정지시키는 장치. 7월 말 코스피에 이틀 연속 발동됐습니다.
- 숏감마하락할수록 기계적으로 더 팔게 되는 파생 구조.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급락 증폭 원리입니다.
- 디레버리징빚이나 레버리지 포지션을 청산해 줄이는 과정. 이것이 끝나야 강제 매도가 멈춥니다.
-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향후 1년 예상 이익 대비 주가의 배수. 시장이 이익을 얼마나 믿는지의 눈금입니다.
- HBMD램을 수직으로 쌓아 AI 가속기에 붙이는 고대역폭 메모리. 이번 사이클 이익의 중심입니다.
- 고정거래가공급사와 대형 구매자 사이의 계약 가격. 현물가보다 실적에 직접 연결됩니다.
- 주주환원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이익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 배수 회복의 두 번째 조건입니다.
- 스프레드회사채 금리와 국채 금리의 차이. 조달 시장이 매기는 위험의 가격입니다.
- 삼성전자·SK하이닉스 2분기 실적 발표 (2026.07) · 씨티 낙폭 집계 (2026.08) · 신한투자증권·하나증권·대신증권·SK증권 디레버리징 판정 (2026.08.04~05) · 유진투자증권 공매도 통계 (2026.08.05) · 신한투자증권 반도체 장비 보고서 (2026.08.06) · JP모건 아시아 테크 전략 (2026.08.05) · 로이터 주주환원 보도 (2026.08.05) · 이란·오만 협상 보도 종합 (2026.08.05~06) · 본 글은 교육·분석 목적이며 특정 종목의 매매 권유가 아닙니다. 투자 판단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