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6월 CPI가 나왔어. 전월 대비 -0.4%. 예상(-0.2%)보다 더 내려갔고, 2020년 4월 이후 6년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이야. 연간으로는 3.5%, 이것도 예상(3.8%)을 밑돌았어.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지. 7월 금리 인상 확률이 40%에서 14%로 무너졌고, 나스닥은 +0.9%, QQQ는 +1.1% 올라서 720달러까지 왔어. 다들 이렇게 읽었어. "인플레 끝났네. 인상 공포도 끝."
근데 같은 리포트 안에,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숫자가 하나 숨어 있어.
컴퓨터와 주변기기 물가. 한 달에 +2.3%, 1년으로 +17%.
그리고 같은 날, IBM이 하루에 -26% 빠졌어.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최악의 하루였어.
이 세 개는 다 같은 이야기야. 인플레는 죽은 게 아니라 이사를 간 거야. 순서대로 벗겨볼게.
1. 마이너스의 정체 — 에너지가 다 했어
6월 CPI를 뜯어보면 하락분의 주범은 에너지야. 에너지 지수가 한 달에 -5.7%. 이것도 2020년 4월 이후 최대 낙폭이야. 휘발유가 급락하면서 헤드라인 전체를 끌어내렸어. 근원(식품·에너지 제외)은 전월 대비 보합, 연 2.6%.
사실 이 그림은 예고돼 있었어. 5월 말에 쓴 글에서 이 사슬을 얘기했었잖아. 유가가 꺾이면 신흥국 통화가 안정되고, 미국채 매도가 멈추고, 금리가 풀린다고. 전쟁발 유가는 3~4개월이면 정점을 찍는 게 역사적 패턴(1990년 걸프전)이고, 6월이 그 구간이었어. 지금 나온 CPI는 그 사슬이 물가 지표에 도착한 거야.
트럼프가 호르무즈 통과 화물에 20% 통행료를 매기겠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한 것도 같은 맥락이야. 걸프 국가들이 반발하니까 "대미 투자로 대체하겠다"며 물러섰어. 유가를 자극하는 카드는 본인에게도 부담이라는 걸 아는 거지. 물론 봉쇄와 공습은 계속되고 있고 WTI는 80달러 언저리야. 이건 뒤에서 다시 얘기할게.
2. 25년 만에 방향을 바꾼 품목
여기서부터가 진짜야.
미국 물가 통계에서 컴퓨터·소프트웨어·주변기기는 지난 25년간 연평균 -5.3%씩 떨어져 온 품목이야. 기술은 늘 싸지니까. 물가 바구니 안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디플레이션 공급원이었어.
그 품목이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 사이 연율 +73%라는 기록적인 속도로 방향을 바꿨어. 그리고 6월 CPI에서 연 +17%로 찍혔지.
이유는 하나야. 메모리.
모건스탠리가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어. 칩플레이션(Chipflation). 지난 50년간 메모리 가격은 5년마다 반값이 되는 게 법칙이었는데, 이 추세가 완전히 뒤집혀서 1년 새 6배가 됐다는 거야. 사이클의 등락이 아니라 구조적 리셋이라는 진단이고.
이게 소비자한테 어떻게 도착하냐면, 스마트폰 원가에서 메모리 비중이 14%에서 40%로 뛰었어. 애플은 맥북이랑 아이패드 가격을 올렸고, 소니는 PS5를, 닌텐도는 스위치2를 올렸고, 엑스박스도 8월에 올라. 가트너는 내년 PC 출하가 -10.4%, 스마트폰이 -8.4% 줄어들 거라고 봐. 가격이 수요를 죽이기 시작하는 단계까지 온 거야.
에너지 인플레가 퇴장하는 문 앞에서, 하드웨어 인플레가 입장하고 있는 거지.
3. IBM의 -26%가 증언하는 것
이 이사(移徙)가 통계 숫자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걸, 같은 날 IBM이 몸으로 보여줬어.
IBM이 2분기 잠정 매출 172억 달러를 발표했는데 컨센서스보다 6.6억 달러 모자랐어. 인프라 부문이 1분기 +15%에서 2분기 -7%로 한 분기 만에 22%포인트 반전됐고. CEO 크리슈나가 직접 서한을 냈는데 핵심 문장이 이거야. 고객들이 대형 계약을 안 닫았다는 거야. 왜? 예산을 AI 하드웨어로 돌려서.
기업들이 메모리·서버·스토리지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사재기를 하느라, 메인프레임 업그레이드·소프트웨어 라이선스·컨설팅 예산을 깎고 있어. 그 불똥이 소프트웨어 전체로 튀어서 서비스나우 -8%, 마이크로소프트도 -3% 밀렸어.
이게 왜 중요하냐면, 지난달에 쓴 빅테크 현금 얘기의 다음 장이거든. 빅테크는 영업현금흐름 전부에 부채까지 얹어서 AI 인프라를 사고 있어. 그 돈이 어디서 오는 것처럼 보이냐가 문제였는데, 이제 답이 보이는 거야. 남의 예산에서 와. AI 지출이 다른 IT 지출을 잡아먹는 크라우딩 아웃이 개별 기업 실적에, 그리고 물가 지표에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한 거야.
역설적인 건, IBM의 추락이 메모리 수요가 그만큼 뜨겁다는 증거라는 거지. 같은 밤 하이닉스 ADR은 +27% 뛰었어.
4. 연준의 새 문제 — 금리로 못 잡는 인플레
자, 이제 연준 자리에 앉아봐.
유가발 인플레는 꺾이는 게 확인됐어. 근데 새로 오는 인플레는 성격이 달라. 칩플레이션은 공급 부족발이야. 금리를 올린다고 메모리 공장이 빨리 지어지는 게 아니잖아. 오히려 증설 자금 조달만 비싸져서 공급 부족을 연장시켜. 수요를 죽여서 잡자니, 그 수요는 국가 전략(AI 패권)이 밀고 있는 수요고.
여기서 워시 의장의 카드가 흥미로워져. 워시는 지금 연준 체계를 5개 태스크포스로 뜯어고치는 중인데, 그중 하나가 물가 측정 방식이야. 근원 PCE 대신 절사평균(trimmed mean) PCE를 쓰자는 거지. 절사평균이 뭐냐면, 그 달에 극단적으로 튄 품목을 통계적으로 잘라내고 평균을 내는 방식이야. 컴퓨터가 +17% 뛰어도, '극단값'으로 분류되면 지표에서 사라져.
그래서 이런 해석이 나와. 워시는 매의 탈을 쓴 비둘기고, 절사평균은 칩플레이션을 안 보이게 만드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거야. 어제 워시가 "물가 안정에 확고하다"고 말하면서도 긴축 신호는 안 낸 것도 같은 결이고.
판별 프레임은 전에 얘기한 그대로야. 지금이 1997년(생산성 디스인플레, 보험성 1회로 끝)이냐 1999년(임금이 생산성 추월, 연속 인상)이냐. 열쇠는 임금이야. 현재 임금 상승률은 3% 중반, 아직 밴드 안이야. 칩플레이션이 임금으로 번지기 전까지는 97년 쪽에 무게가 실려.
5. 시나리오
QQQ 720달러 기준으로 정리해볼게. 52주 고점은 748이야.
A. 이사 완료, 시장은 눈감아 준다 (45%) 에너지 디스인플레가 이어지고, 칩플레이션은 절사평균 논의 속에 '특이 항목' 취급을 받고, 7월 말 빅테크 실적에서 캐펙스와 AI 매출이 확인되는 경로. 748 재도전. 21~22일 빅테크 실적이 트리거야.
B. 새 집주인이 시끄럽다 (35%) 하드웨어 인플레가 근원 상품 물가로 번지는 게 다음 달 지표에서 확인되고, 인상 논쟁이 재점화되는 경로. 680~720 박스. 이 경우에도 폭락보다는 소화 국면에 가까워. 단기 유동성이 여전히 풍부하다는 게(SOFR가 예치금리 아래) 바닥을 받치고 있거든.
C. 옛 집이 불탄다 (20%) 호르무즈야. 통행료는 철회됐지만 60일 통행료 면제 합의가 8월 16일에 만료돼. 여기서 틀어지면 에너지 인플레가 되돌아오면서 두 인플레를 동시에 상대해야 해. 650~680 되돌림. 아니면 가트너의 출하 감소 전망이 현실화되면서 소비 위축이 실적에 찍히는 경우도 여기 들어가.
정리할게.
어제 시장은 "인플레가 끝났다"에 베팅했어. 반은 맞아. 에너지 인플레는 끝나가. 근데 물가 바구니 안에서 25년간 물가를 눌러주던 품목이 방향을 바꿨고, 그 청구서가 기업 예산과 소비자 가격표에 동시에 도착하기 시작했어.
그러니까 이제 볼 지표가 바뀌는 거야. 헤드라인 CPI 말고, 근원 상품 물가 안의 전자기기 항목. 연준이 절사평균 PCE를 공식 채택하는지. 그리고 8월 16일.
인플레는 죽지 않았어. 이사를 갔을 뿐이야. 새 주소를 아는 사람만 다음 지표 발표일에 놀라지 않아.
용어 한 줄 정리
- 소비자물가지수(CPI)소비자가 사는 물건과 서비스의 가격을 모아 만든 대표 물가 지표입니다.
- 헤드라인 물가모든 품목을 포함한 전체 물가. 에너지와 식품이 크게 흔들어 놓습니다.
- 근원 물가변동이 심한 식품과 에너지를 뺀 물가. 추세를 보기 위해 씁니다.
- 개인소비지출(PCE)연준이 통화정책의 기준으로 삼는 물가 지표. 소비 구성 변화까지 반영합니다.
- 절사평균그 달에 유난히 튄 품목을 잘라내고 평균을 내는 방식. 극단값이 지표에서 사라집니다.
- 디스인플레이션물가가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르는 속도가 느려지는 상태입니다.
- 칩플레이션메모리 등 반도체 가격 급등이 전자제품 물가를 밀어 올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크라우딩 아웃한쪽 지출이 커지면서 다른 쪽 예산을 밀어내는 현상. AI 투자가 기존 IT 예산을 잠식합니다.
- 컨센서스여러 증권사와 기관 추정치의 평균. 실제 수치가 이보다 위인지 아래인지로 서프라이즈가 갈립니다.